미셸 푸코는 지식이 단순히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며, 권력과 연결된 재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의 사상은 대학생인 나에게 학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만 무척 방대하고 난해하여 어려웠는데, 프레데릭 그로의 <미셸 푸코>를 통해 푸코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책을 기본 베이스로 미셸 푸코의 사상을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먼저 이 글은 이 책과 몇 가지 개론서만을 불확실하게 이해하며 쓴 내용이라 내용의 많은 부분이 틀릴 수 있다는 점, 양해 바란다.
1. 보편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푸코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보편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니체의 사상에 기반하며 구조주의와 유사한 지점이 많다.(푸코 자신은 이런 가정을 니체의 이론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며, 구조주의와의 유사점을 부인했다.)
니체는 서구 근대 철학의 뿌리에 기독교적인 도덕관념이 있음을 밝히며 ‘진리의 역사성’에 대해 말한다. 그가 알아본 기독교적 도덕관념은 ‘약자의 도덕에 대한 긍정과 강자의 도덕에 대한 부정’으로 정리된다.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에 의해 억압받고 가난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가난, 자신의 낮춤, 왜소함 등을 미덕으로 포장하였고, 반면, 강자의 부유함, 힘, 과시력, 쾌락향유 등을 악덕으로 폄하했다. 이를 ‘르상티망’(원한)이라 한다. 르상티망은 훗날 서구를 관통하는 절제, 겸손, 자기부인 등의 도덕으로 보편화되었고 평등주의로 발전했다. 그런데, 서구는 이런 도덕들을 보편적인 선 혹은 악으로 간주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니체는 이런 역사적 연구를 통해, 보편적 진리란 역사적으로 탄생한 산물이며 집단의 특수한 관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개 집단의 관점과 사상들은 서로 간에 경쟁하며 상대를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권력에의 의지’라 부른다. 모든 진리는 집단중심적인 특수한 주장을 집단 외부로까지 확장하려 하며 발생하는 적자생존 결과물이다. 이처럼 니체는 진리를 관점주의, 역사주의, 힘에의 의지로 보았고, 이를 푸코는 받아들인다.
2. 에피스테메
1) 지식의 역사
초기의 푸코는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을 저술하며, 광기나 의학 등의 대상에 대한 지식들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통념 상으론, 이런 개념들은 오랜 과거에 근거 없는 미신과 편견으로 가득찬 무지에 놓여있다가 계몽주의적인 연구에 의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지식이 쌓이고 마침내 진실에 도달한다고 여겨져왔다.
점진성 문제
하지만, 푸코는 이런 점진적인 지식 누적론이 위의 두책과 같은 실제 과정에서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예컨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광기는 환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종말과 혼돈에 대한 징후로 여겨졌다. 따라서 광인은 단순히 미친게 아니라 세계의 멸망에 관한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반면, 계몽주의 시기에는 광기가 이성의 일반적인 자기 회의와 비판 과정의 산물이라며 일반인 역시 광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 없다고 여겨졌다. 데카르트에 이르러서야 광기는 단순한 비이성이나 맹목과 다른 개인적인 무언가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광기는 정신병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도덕함, 게으름, 일탈의 일종으로 여겨지며 부랑자, 빈민, 동성애자 등과 함께 시설에 감금되어 교화되어야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런 광기가 정신병적인 문제로 간주되며 치료의 대상이 된 것은 18세기부터였다.
2) 에피스테메, 구조주의
18세기 즈음 근대지식사에서 가장 큰 변화점은 ‘인간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탄생이다. 실증적 연구란, 기존의 논리적 인식들을 모두 배제한 체 보이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 이전의 연구방식들, 즉 기존의 사회적 상식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연구하는 방식들의 한계를 인식하며 시작되었다. 예컨대, 사회학은 이전 시대에 상식처럼 여겨졌던 전통사회의 붕괴와 급증하는 자살 문제로 인해 시작되었다. 언어학은 실어증같은 문제들에서부터 인간 개념을 새로 정립하며 형성되었고, 심리학은 광기를 단순히 비이성이나 부도덕으로만 볼 수 없다는 깨달음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즉, 지식의 발전은 단순히 누적되며 이뤄지지 않는다. 중세, 고전주의 시기, 근대는 각자 지식을 형성하는 기반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에피스테메’라고 부른다.
에피스테메는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구조에 대한 사유는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했지만, 구조주의의 구조론은 이와 다르다. 구조에 대한 통념은 사물이 존재한 이후에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지만, 구조주의는 구조가 사물에 선행한다고 간주한다. 즉, 사물의 지극히 일차적인 형상 정도를 제외하고 사물의 본성과 의미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구조에 의해 부여된다.
예컨대, ‘얼음’은 우리에게 불리는 방식에 비해, 에스키모인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훨씬 다양하다.(에스키모인이 멸칭이라는 말이 있지만, 북극 근처 원주민 중에는 이누이트인 외에도 다양한 이들이 존재하므로,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말에 대해 난 모른다. 따라서 동양인, 서양인같은 범주의 뉘앙스로 이렇게 부르겠다). 그들에게 얼음은 ‘깨지기 쉬운 얼음’, ‘눈이 덮힌 얼음’, ‘흘러다니는 얼음’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 우리만 하더라도 나무를 예로들면, 가지나 뿌리, 잎사귀, 잎사귀 중에서도 뿌리 근처에서 나는 잎사귀, 줄기에서 나는 잎사귀 등을 구분하며 꽃의 형태에 따라서도 다양한 구분을 한다. 이런 구분들은, 크게 보면 모두 꽃, 나무, 혹은 식물 등의 범주이지만, 이를 사람이 편의상 구분해놓은 것 뿐, 실제로 이런 구분에 따라 별개로 실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구조주의는 인간의 언어가 구조와 사물을 편의상 만들어내고 사물에다가 의미와 본성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푸코에 따르면, 각 사회마다 각자의 고유한 구조, 즉 에피스테메가 존재한다. 예컨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투구꽃이 인간의 눈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으며, 그 근거로 투구꽃과 인간의 눈 간의 형태적 유사성을 들었다. 즉, 외적인 형태의 유사성이 두 사물 간의 비밀스러운 연결관계의 근거라는 것이 이 시기의 지식을 형성하는 구조의 일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에피스테메들은 다른 시대에서 단절적으로 교체된다.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18세기 혁명 직후의 의학이 단순히 외견상의 증상간 유사성을 기준으로 병들을 분류했지만,
조직검사와 해부학의 발전으로 외적인 유사성이 판단의 기준이 될수 없다는 지식으로 교체되었듯이, 한 에피스테메에서 다른 에피스테메로의 전환은 단절적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에피스테메에 종속된 지식 역시 단절적으로 교체된다.
3) 에피스테메에 대한 비판론
푸코는 <말과 사물>을 통해 기존의 점진적 발전론을 믿던 과학사를 공격하였다. 에피스테메의 단절적인 전환론을 주장한 핵심은 모든 지식의 기저에는 에피스테메가 존재하므로,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붕괴하는 순간, 우리가 진리라 믿어왔던 그러한 지식들 역시 사라질 거란 것이었다. 특히, 그에게 인간에 대해 다루는 학문인 심리학이나 범죄학, 사회학은 인간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생물학, 경제학, 언어학과 다르게, 인간에 대한 담론적인 표상을 담고 있었으므로, 담론의 붕괴에 특히 지식이 단절될 것이었다. 특히 그에게 ‘인간’이란 근대의 에피스테메로 구성된 개념에 불과하므로, 이성이 부자유를 타파한다거나 인간본연의 본성 혹은 자유라는 언어 역시 보편적인 이상이 아니라 이 시대에 국한된 일시적인 산물에 불과했다,
푸코의 이러한 사상은 일부 과학 뿐만 아니라, 당시 인간의 해방에 대해 구상하던 실존주의, 휴머니즘에게 큰 논란이 되며, 이들에게 푸코는 비판 대상으로 올랐다.
공산주의 측은 역사가 고대사회부터 중세,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토대의 변화 아래 발전해왔으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진보하는 과정이라 보았다. 따라서, 푸코의 에피스테메 이론이 인간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드려는 모든 시도들을 한낱 시대적인 일시적인 것들로 허무하게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샤르트르 역시 인간은 단순히 구조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구조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는 존재라 반박하면서 푸코의 이론은 인간이 구조에 대항하는 의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제도적 구조적 억압들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이 쯤에서 정리하자면, 에피스테메 이론의 의의는 인간의 정신이 세계와 분리된 독자적인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읽고 쓰고 말하는 실제 언어 뿐만 아니라, 대상을 감각하고 경험하는 인지방식 역시 구조의 산물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시대의 지식들은 자신들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왔지만, 이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은 역사적 산물이었다.
하지만, 에피스테메 이론의 한계도 존재했다. 모든 사유가 구조의 산물임에도 현 체계에 저항적인 사유들이 등장하며 구조를 바꾸는 일들을 설명하기 어려웠으며, 인간의 사유가 구조의 종속물이라면 사유가 정치적으로 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허무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다.
3. 권력 모델
1) 담론이란 무엇인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시절, 푸코는 자신의 방법론을 구체화한다. 먼저 푸코는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담론으로 규정한다. 통상적으로 담론은 한 집단 내 보편화된 일련의 지식, 혹은 사유 방식을 말한다. 이는 구성원들의 순수한 사유와 커뮤니케이션의 산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푸코는 담론 역시 역사적 산물로서 외부의 사회정치적 영향들과 내부의 고유한 언어규칙에 의해 제한된다고 주장했다.
담론의 제약은 크게 외부적 배제와 내부적 제한, 그리고 주체성으로 구분된다. 외부적 배제는 세 가지 요소로 나뉜다. 첫째, 근대의 성관념이나 절대적인 도덕, 예절 등 공적 논의 자체가 금기시 되는 ‘금지’, 둘째, 데카르트가 광기와 이성을 구분했듯, 동일한 구성내용을 공유하는 두 요소를 나누고 어느 하나늘 담론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분리와 거부’, 셋째, 사물이 가지는 여러 가지 특징과 의미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제한하며 진실이라 부르고 나머지를 거짓이란 명목 아래 배제하는 ‘진실과 거짓의 이항 대립’, 이렇게 구성된다.
외부적 배제는 앞서 말했듯 정치사회적 사건들에 의해 영향받으며, 특히 담론을 좌지우지할만한 권력체, 특히 교육체계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
내부적 제한에는 해석(텍스트의 중의적이고 모호한 의미들을 표면적으로 추출하고 고정하는 것), 이론의 취합(이리저리 흩어진 이론들을 저자 중심으로 체계화하고 간추리는 것), 분과학문(인문학, 과학, 미학 등 각자의 분과학문이 역사적으로 정립한 논리전개 방식과 방법론만을 이용하는 것), 철학적 기반들(담론을 전개하는 데 타당성으로 이용되는 것들) 등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담론은 역사적 맥락의 제약에서 이뤄지는 특수하고 시대의 일시적인 산물이지만, 담론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당 담론에 참여하는 이들은 담론으로부터 세계와 자신에 대한 보편적인 규칙과 방향성을 제시받길 원하며, 담론의 힘은 이런 보편적 설명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론은 제한적인 정보와 논리만으로 해당 영역으로 예측 불가한 것, 우연적인 것, 환원불가능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담론 내부로 편입시킨다. 이는 상대주의적 허무주의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사물의 비환원적인 측면들 역시 담론으로 폭력적으로 은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푸코는 새로운 연구주제를 담론의 역사적 양상과 더불어, 담론에 의해 폭력적으로 재단되고 은폐된 요소들을 밝히는 데 둔다.
2) 지식, 진실권력
진실과 지식에 대해 고대 그리스 시절 소피스트들은 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에 따르면, 지식이란 자기중심적인 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서로 간의 갈등에서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적 지식론을 거부하며, 이해관계를 배제한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진리론은 서구 철학의 근본 토대가 되었다.
반면, 니체는 이런 근본 토대를 반박하며 지식이 보편타당한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크게 4 가지로 정리된다.
외부성의 원리
: 지식의 근본적 토대는 지식 외적인 인간의 자기중심적 해석과 힘에의 의지에 있다.
허구의 원리
: 모든 지식은 그저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지식은 필연적으로 현실을 단순화시키며 정립되므로, 완전히 복합적인 현실에 온전히 참일 수 없다. 지식은 가장 널리 참으로 인정받는 오류의 한 종류다.
분산의 원리
: 어떤 지식이 진실로 인정받는 것은 주장자 개인의 논증 이외에도 역사적인 맥락의 산물이다.
사건의 원리
: 지식과 진실이란, 끊임없이 현재 존재의 시각에서 재해석되므로, 현재의 맥락에 따라 늘 재창조된다.
푸코는 니체의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며 보편적인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에게 진리란, 진실이라는 명분 아래에 다른 모든 사유와 행위가능성을 배제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관철하는 것이었다.
3) 권력 이론
푸코는 통상적인 권력 개념을 반박하며 새로운 권력이론을 수립하였다. 일반적인 권력 개념은 권력을 소유물이자 억압체계로 이해한다. 마르크스와 사회계약론 등에 기반한 이런 이해방식은 권력을 권력자의 소유물로서 피권력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이자 정치권력이나 군사력처럼 폭력, 즉 물리적 강제력의 일환으로 본다.
하지만, 푸코는 권력을 소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전반의 규칙과 관계로, 그리고 억압이 아닌 자유와 생산 체계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모두가 가지고 있다. 권력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으로 볼 때,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전제군주조차 가장 권력이 없는 가난한 민중에게 모든 행동을 행사할 순 없다. 예컨대, 모두를 죽인다거나 민중 다수가 믿는 종교나 문화를 통째로 바꿔버린다든지 말이다.
권력은 일부의 소유물을 넘어, 한 사회 전체에 통용되는 규칙이며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종교, 학문 등 다양한 층위에 존재한다. 이런 권력의 핵심 역할은 주체가 타자에게 할 수 있는 행위와 사유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또한, 권력은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예절은 어른 대 어른, 어른 대 아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권력이 근본적으로 관계에 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은 단순히 행위나 사유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보장시킨다. 그는 통상적으로 가장 억압적인 영역이라 여겨지는 성 담론이 근본적으로 성에 대한 더 많은 말들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그에 따르면, 18세기의 섹슈얼리티 담론은 성욕과 성행위를 다루며 법률적 차원에서 부부간의 섹슈얼리티를 규정했다. 비록 동성애나 아동성애는 위법화되었고 탄압당했지만, 이는 권력 작용의 부차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근대 권력의 핵심은 도덕이나 미덕처럼 관용이 허용되는 동시에 애매모호한 영역을 참과 거짓, 자연적 본성과 비정상성 등으로 대상화하며 사회의 양지에서 보장될 수 있는 지식과 은폐되어야할 지식의 범주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권력은 불확실한 영역을 확실한 것으로 규정지으며, 인간이나 자연 본성에 관한 지식을 생산한다.
그에게 근대사회의 권력과 지식, 주체성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은 단순히 무력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참과 거짓의 의미를 생산한다. 지식은 권력에 바탕하여 이러한 지식을 체계화시키며 권력의 의미체계를 안정화시키며 권력에 기여한다. 권력은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미체계를 확장하며, 인간의 자연적으로 마땅한 본성, 행위 등을 규정한다. 이런 규정들은 주체의 자아 중 핵심으로 자리잡으며 주체를 구조 내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4) 규율사회
<감시와 처벌>, 그리고 일련의 논문에서 푸코는 지식-권력 체계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를 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전근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감옥 제도가 어째서 가장 보편적인 형벌제도로 자리잡았는가에 있다. 프랑스 혁명 이전, 처벌의 중심은 벌금과 체형이었으며 특히 체형은 죄질이 나쁜 자들에 대한 고문과 공개적 형벌의 전시로 구성되었다. 구금은 형벌 집행하기 전, 죄인을 잡아두는 수단에 불과했다.
프랑스 혁명 직후, 법학자들의 형벌이론은 형벌이 사회유지를 위해 처벌을 본보기로 전시하여 대중들에게 법의 권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전시효과가 없는 감옥은 사회질서 유지에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제의 왕조가 저항적인 사람들을 자의적으로 잡아놓는 수단으로 보여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이 형벌제도로 보편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전반에 질서유지 메커니즘으로서 통제와 관리에 관한 담론들 덕분이었다. 학교, 병원, 공장, 병영 등의 사회전반에 확립된 이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구획화
모든 인간은 그의 직위, 능력, 기여도 등에 따라 적절히 구획된 역할에 배치되고 통제되어야한다. 이런 배치는 학교든 공장이든 병원이든 각자의 목적을 가지지만, 근본적으로는 목적의 최대달성을 위해 인간을 ‘규범에 최적화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정상화
정상화란, 구획에 배치된 인간들을 합목적성에 걸맞게 개조하는 일련의 절차들이다. 이때, 이 절차들은 각 인간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체의 아주 세세한 제식, 인사, 예절, 습관 전반을 바꾸는 것이므로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 즉 ‘신체권력’이라 부른다. 이제 정상화의 세부적 과정을 알아보자.
미시적인 교정과 평가
배치된 인간은 그의 사상을 개조하기 위해 아주 기본적인 삶의 전반을 간섭받는다. 기상시간, 취침시간, 노동시간, 쉬는시간, 식사시간, 기도시간, 운동시간 등의 일정을 명령받고 각 시간 안에서도 그가 규칙에 맞게 행위하는지 성과를 얼마나 달성하는지 평가받는다. 이 모든 감시와 간섭, 그리고 평가는 그의 행위를 너머 그의 인간 자아 자체를 교정하려는 시도들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간섭과 평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기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고 되돌아봐야만 한다.
감시와 평가의 판옵티즘
판옵티즘은 벤담이 제안한 파놉티콘에 빗댄 것이다. 기존의 감옥이 단순히 죄수를 구금하는 데 초점맞췄다면, 파놉티콘 형식의 감옥은 구금뿐만 아니라 감시의 독특한 형태를 만든다. 이 감옥은 원형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빙 두른 형태의 감방들이 마치 감시탑을 감싼 벽처럼 존재한다. 따라서, 감시탑은 모든 방향에서 감옥을 상시 감시할 수 있지만, 감옥은 특수한 구조로 인해 감시탑 내 감시자가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감시는 감시자만이 가능한 일방향적인 가시성이다.
일방향적인 가시성은 앞서 말한 미시적인 교정, 평가 등과 결합하며 죄수들을 늘 감시의 불안에 시달리게 만든다. 결국, 죄수들은 스스로 편안해지기 위해 적응하기 위해 감시자의 규범을 내면화하여 마치 자신의 자유의지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이를 어길 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지식
19세기 인간과학은 인간의 생산성을 늘리고 규율하는 방식에 관한 지식들을 만들어낸다.(경영학, 심리학, 범죄학 등)
이들은 권력의 토대로 생산된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의 본성과 적합한 규율방식에 관한 지식을 정리하고, 권력은 이런 지식들을 기반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을 규정한다. 지식과 권력은 체계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데 상호보완적인 셈이다.
결론
전근대의 권력 메커니즘은 권력에 저항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전시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권력의 권위를 유지하였다. 예컨대, 고문과 공개처형은 끔찍하게 훼손된 죄인의 신체를 공개함으로써 공포와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였다. 프랑스혁명 초기 법학자들 역시, 고문의 잔혹성을 비판하면서도,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형벌의 전시 필요성에는 동의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대중들에게 공포와 함께 과도한 권력의 행태에 큰 반감을 만들어냈다.
반면, 근대의 규율권력 메커니즘은 형벌을 전시하는 대신, 사회 도처에 권력의 감시와 통제, 교정과 평가, 그리고 배치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장에서 병영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자기 행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개조받는다. 그리고 이런 권력에 복속하지 않음은 다름을 넘어 거짓과 부적절함으로 간주될 뿐이다. 규율권력의 작동은 연극적인 전시 권력과는 다르게 눈치채지 못할 수준으로 작동하므로, 사람들은 권력에 자신을 맞춰가는 과정을 자유의지, 양심으로 인식하게 된다. 푸코는 감옥의 실질적 기능을 반권력적 분자들이 정치적으로 규합하는 것을 막고 적절히 낙인을 찍으며 사회 밖으로 격리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의의와 한계
이러한 권력 모델은 이전의 에피스테메 모델과 비교했을 때, 권력구조의 생산적인 측면과 더불어 억압적인 측면을 드러냈고, 주체성을 향한 정치적 운동들이 이러한 것들의 철폐를 향해 가야한다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 푸코는 여전히 지식과 주체가 권력에 종속된 존재로 보았으므로, 권력에 저항적인 지식이나 주체가 출현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4. 통치성 모델
1) 이론적 측면
1970년대 전반에 제시했던 권력 모델은 1978년에 통치성 모델로 대체되었다. 먼저 권력 모델에서는 역사적으로 지식과 주체성을 권력에 종속적인 걸로 본 반면, 통치성 모델은 권력과 지식, 주체성의 관계를 ‘절합’으로 보았다. 절합이란, 서로 다른 두 요소를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양태를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물분자인 H20는 수소 원자와 산소원자로 이뤄졌으나, 이들 요소가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물 분자는 이들로 인한 구성물임에도 이들로 환원되지 않는 창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지식과 주체는 권력의 기반 아래 형성되지만, 권력의 의미체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맥락에 따라 고유한 것을 생성한다. 이런 점에서 권력 기반의 지식과 주체 역시 창발적으로 저항적인 요소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구에 대한 통치성(국가이성과 자유주의)
통치성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부터 18세기, 그리고 현대까지의 통치합리성을 연구한다. 통치합리성이란, 통치 주체가 자신의 통치행위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판단기준이다. 중세시대의 통치합리성은 지배하는 국가를 얼마나 번영시키는가보단 기독교적인 대의를 이루거나 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등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구성되었다.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통치는 국가 자체를 부강하고 안정시키는 것에 초점맞춰졌는데, 이를 ‘국가이성’이라 부른다. 이 시기의 국가 이성은 ‘제한된 외치’와 ‘무한한 내치’로 요약된다. 제한된 외치란, 국가는 외부로의 행위인 외교, 군사활동을 현 국가의 경계와 치안, 국제 균형을 유지하는 선으로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즉, 영토확장같은 외부 확장의 동기는 허용되지 않으며, 오로지 방어적 목적의 전쟁으로 전환된다.
반면, 내부의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인구나 자원은 철저히 불려나가야할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관료제 시스템을 확장하고 인구나 자원을 통계로 축적하며 다양한 경제학 기법을 동원하여 이들을 지원하고 계획하며 실행해나갔다. 이런 통치성과 결합한 지식, 특히 정치경제학은 국가가 어떻게 해야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제공했고, 주체들 특히 상인들은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해갔다.
반면, 18세기에 이르면, 이들간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정치경제학 내에서 자유주의적인 학파들이 크게 성장하며 국가이성의 방향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가가 내치의 영역에 간섭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며 국가의 역할을 시장 시스템의 작동보장으로 제한시켰다. 통치성과 지식의 기존 관계를 뒤바꾼 이 주장은 국가이성의 내치 합리성과 맞아떨어지며, 국가는 국가를 위해 국가를 제한해야한다는 새로운 통치합리성이 등장하였다.
20세기 이르러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독일에서 경제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게 만들었다. 이제 지식인들은 국가개입이 단순히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야기한다며 거부했고, 이제 국가개입의 축소는 경제적인 맥락이 아니라 정치적인 위험의 문제였다. 반면, 미국의 지식체계는 인간을 철저히 경제합리성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보는 지식을 생산했고, 이는 국가가 경제 뿐만 아니라 행정, 정치, 범죄, 교육 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시장에 모든 걸 맞기는 것이 옳다는 걸 진실로 간주하게 했다.
이처럼 통치합리성의 계보학을 통해, 권력과 지식, 주체는 단순히 일반적인 지배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대한 규칙을 마련하고 상호영향을 주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5. 주체화
1980년대 들어 푸코의 마지막 계획은 인간이 어떻게 주체가 될 수 있느냐였다. 이는 70년대 초기에 푸코가 비판받았던 질문, 즉 권력과 지식에 종속된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해방되어 주체화될 수 있느냐, 그리고 윤리적인 주체란 무엇인가였다. 이 주제를 연구하는 중 푸코는 사망했고, 온전한 답을 내놓지 못해 남은 자료들로 그 답을 구성했다.
윤리적 주체의 해답으로 푸코는 크게 세 가지, 쾌락에 대한 자기 통달, 자기배려(자기 본성에 대한 앎과 긍정), 파레시아(진실을 올곧게 말하려는 태도)를 말했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자기 통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머지 두가지에 대해 말하겠으니 양해바란다.
1) 자기배려
자기 배려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기 부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자기 부인이란, 인간 본연의 탐욕, 이기적 본성, 자기중심적 불완전성 등을 부정하려는 태도다. 기독교 사상이나 근대철학의 보편론과 독아론에 뿌리를 둔 이 관념은 현재세계에 집중하는 대신, 형이상학적인 세계, 플라톤의 이데아나 종교의 내세, 천국같은 것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사상들은 인간과 세계의 불완전성을 주장하며 절대적인 지식의 수립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요구가 과잉될 때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나, 지나치게 억압할 때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일원론적인 도덕이 개인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는 폭력을 발생시킨다.
이는 우리도 알다시피, 개개인의 특수한 맥락을 도덕이나 성적, 생산성 등의 차원으로 재단하며 발생하는 문제들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적실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자기배려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알고 긍정하며 적절히 제어하는 데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타자를 통치하는 정치적 엘리트들의 자기관리 기술로 제시되었던 자기배려는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삶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기술로 남성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불완전성과 자기결함을 해결하기 위해선, 타자의 비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혼자서 자기자신을 알 수 없으므로 타자에 대한 배려, 우정, 공존이 필수적이다. 또한, 모든 지식은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자기 배려를 위해서 인간은 욕망의 적절한 절제, 인내, 사유 뿐만 아니라. 외부에 귀를 열어놓는 경청이 필요해진다.
2) 파레시아
파레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선 현대의 냉소주의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 냉소주의는 현재와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염세주의와 인간 본성을 사악하고 파괴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는 성악설, 모든 지식과 도덕을 지배자 중심의 위선으로 간주하는 인식의 결합물이다.
좁은 의미에서 냉소주의는 이런 세상의 개선과 계몽을 포기하는 것, 즉, 비판적인 의견을 내며 주류와 싸우기보단, 적당히 부조리에 타협하고 아첨하며 자기 이익 위주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파레시아는 권력에 굴복적인 ‘아첨’이나 진실보단 설득과 자기이익을 위한 말인 ‘레토릭’과 다르게, 진실만을 말하려는 태도이다.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사례삼아, 아테네 민주주의의 특징을 이세고리아(시민이라면 누구나 의회에서 발언권을 얻는 것), 파레시아(공동체에 참된 담론을 개진하고 인정받는 것)로 정리한다. 하지만, 페리클래스 이후 중우정치가들의 득세에서 보이듯,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파레시아는 점차 대중들의 공격을 받으며 신변의 위협이 되어버렸고, 아첨과 레토릭에 의해 대체되어 버린다.
결국, 플라톤은 민주정 내에서의 파레시아 가능성을 포기했고 깨어있는 전제군주와 철학적 조언자 간의 파레시아로 전환했고, 그렇게 철학과 정치의 관계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는 철학적인 진리가 전체주의적인 권력이 될 위험, 그리고 진리가 권력영합적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만들고 말았다.
3) 윤리적 파레시아, 견유주의, 적시로서의 파레시아
지금까지의 파레시아는 주체가 자신의 이론체계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것, 즉 자신의 이해관계대로 타자를 통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면, 소크라테스는 전혀 다른 파레시아를 말한다. 그는 시장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신만의 문답법으로 사람들에게 각자의 편견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든다. 이런 방식은 각자가 자신이 진실이라 믿어왔던 의미체계를 회의하며, 더 나은 앎, 각자만의 더 높은 사유에 도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파레시아는 자기 의견의 관철이 아니라, 타자가 자신만의 의견을 갖도록 함에 있다.
푸코에게는 권력 철학의 측면에서, 권력의 의미체계를 주체에게 관철하기 위한 철학이 아닌, 오히려 각자가 각자만의 의미권력을 가지도록 하는 철학, 권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윤리성 때문에, 윤리적 파레시아라고 부른다.
견유주의는 윤리적 파레시아의 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그 어떤 교리나 지식도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일한 내용이란, 주체는 자연적인 신체와 본성으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며, 돈이나 권력, 명예, 사치와 문화적 허영에 의존하는 삶은 그 의존만큼이나 사람을 더 공허하고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디오게네스는 스스로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개처럼 길바닥에서 먹고 자며 시장에서 자위를 하고 오줌을 누었다. 그는 인위적인 이성과 지식으로 삶을 짓누르기보단 사는 그대로 지식을 말하길 원했다. 누가 말했듯, ‘말하는대로 사는 것보단 사는대로 말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러면서 이기주의는 자기자신을 결국 욕망으로 망치며, 인간과 자연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위적인 차별이나 폭력, 착취없이 서로가 친구가 되길 바랬다. 이런 것들을 말하기 위해 그는 자기 스스로를 대중 앞에 적시하며 경악과 충격을 주었고 이로써 사람들이 불편해할지언정,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에게 자기 자신의 위험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푸코에게는 거대한 지식권력체계에 대해 억압과 폭력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기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침묵하는 대신, 뻔뻔하게 반대를 던질 수 있는 비타협성이 주체적인 인간의 조건이었다.
결론
여기서 보다시피, 푸코의 철학은 우리에게 막 엄청난 해답을 주진 않는다. 주체화를 하기 위해 빽빽이 많은 교리를 주지 않으며, 그저 각자만에 정답을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푸코의 사상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푸코가 역사적인 사료들을 광기,의학, 권력, 이성, 통치성 등 자기 연구주제에 맞게 짜깊기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이 점은 푸코 역시 스스로 인정하며 한 인터뷰에서 “나는 허구(fiction) 이외에는 그 무엇도 쓴 적이 없다(187p)”라 말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철학의 임무란, 사실이나 진리를 발견하는게 아니다. 거꾸로 사실과 진리라는 이름 아래에 일원적으로 강요되었던 권력을 드러내고,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던 것들을 이야기하려 했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진리는 진리가 아니며, 진실은 시대의 상대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의 목적이 오로지 나와 공동체의 행복에 있다면, 우리는 절대적 진리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억압하기 보단, 각자에 걸맞는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체성들이 또다시 더 나은 길을 위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억압이 적은 더욱 윤리적인 길을 찾는 사회가 푸코의 연구를 관통하는 주제. 즉 ‘주체화’의 결론이었다.
푸코의 사상은 난해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지식의 역사, 에피스테메, 권력 모델, 통치성 모델 등 다양한 전회를 겪었는 듯 보이지만, 포괄적인 주제는 언제나 하나였다. 바로 '타자에 의해 구성되는 주체의(예속적) 주체화를 시종일관 사유하는 철학' (198p)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푸코의 사유가 한국에 생산적인 기여를 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답은 내 생각엔 여전히 지식의 진실, 철학의 보편적 해답, 이해관계 없이 객관적인 지식의 패러다임에, 푸코가 말하듯, 지식의 기저에 있는 권력 이해관계, 그리고 지식체계는 실증을 넘어 재현이자 권력의 문제라는 시각을 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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